흙멘탈리스트
2인자 나르시시즘과 신앙의 힘 - 왜 두목보다 행동대장이 더 지독한가 본문
영화 등을 보면 악당 조직에서 최고 보스보다 중간 보스나 행동대장급 인물이 더 지독하게 묘사되고, 두목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느긋한 태도에 문명적 대화가 가능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물론 본질적인 사악함의 정도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어떤 대화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행동대장에 비해, 보스 쪽은 그나마 뭔가 여유로워 보이기 때문에 적어도 어떤 거래 제안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두목 쪽이 차라리 덜 위험하고 덜 무서워 보인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답은 단순하다.
실제로 최초의 결정을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것은 두목 뿐이기 때문이다. 최고 보스는 본인이 일의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 초안을 수정해 새로운 거래 제안을 고려해 볼 여지와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죽이기로 했다가도 대상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솔깃한 제안을 해서 상황이 바뀌었다싶으면 그 결정을 철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그림에 대한 기획력 없이 보스가 맡긴 임무를 수행하는 서열 아래 조직원들은 그렇게 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그들은 그저 보스가 시키는대로 할 뿐이다. 많은 경우에 이들은 보스의 최종목표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해당 임무를 맡긴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상대방이 뭐라 하건, 상황이 어떻게 변하건,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자기 판단력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이런 현상은 종교 집단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어떤 종교에서든 숭배 대상 및 교주보다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에게 더 강하고 경직된 광기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광신도'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리더는 언제나 자신이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확신'에 자신의 에너지 전체를 쓸 수가 없다. 제아무리 병적 나르시시즘 끝판왕에 자기 확신이 넘치는 사이비 교주라 하더라도 상황에 맞게 적응해가며 손수 결정을 내리려면 의심과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교주는 자신이 내세우는 불완전한 세계관을 보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교주가 하는 말을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의존하고 있는 신도 입장과는 다르다.
신앙의 힘은 무섭다. 종교적 믿음에 무언가 설명 못할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한 맹신은 집중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건 간에 단순한 확신과 믿음은 동일한 힘을 발휘한다. 의심하고 있는 사람은 최선을 다할 수 없다. 만약 어려운 퍼즐을 푸는데 '이 문제에는 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그 퍼즐 풀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상당수가 그냥 때려치우고 싶어할 것이다. '답이 반드시 있다'고 믿어야 끝까지 해결해보겠다는 다짐이 가능하다. 확신의 유무는 곧 성과의 유무로 이어진다.
이 점 때문에 실제로 바보같은 종교라도 그 종교를 나름 생산적인 자기 확신으로 이용해 놀라운 자기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왜 톰 크루즈는 수십 년째 별반 유명하지도 않고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는 이상한 종교를 믿고 있을까. 이는 필시 그 종교의 세계관이 그에게 모종의 강한 자기 확신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종교 없이도 충분히 잘난 사람이니 그냥 안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외부인의 생각일 뿐이다. 그 사람에게서 그 종교를 빼앗는다면, 아마도 그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이나 모험심도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광신도만이 누릴 수 있는 이 강력한 신앙의 힘을 개인적으로는 '2인자 나르시시즘'으로도 부른다. 1인자 나르시시즘이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근거한 타인 착취 체제라면, 2인자 나르시시즘은 내가 아닌 타인 중심적 세계관에서 자신이 기여하는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핵심이다.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에게 자아를 의탁하고 대리만족을 통해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이건 누구나 의외로 빠지기 쉬운 심리 상태이다. 능력치 면에서 정규분포 중앙 부분에 몰려 있는 대다수의 인구가 다짜고짜 '나는 천재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라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절대자를 만나기 전 나란 존재는 비록 비루했으나 이제는 우주의 절대자가 나를 쓸모 있는 일꾼으로 인정해주셨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그럴싸하다. 그리고 후자의 이론을 믿는 사람은 전자보다 훨씬 더 굳은 심지를 가질 수 있다. 전자는 믿을 것이 자신 뿐이지만 후자가 믿는 대상은 무려 '우주의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이쪽은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나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우주의 절대자'가 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상황 변화를 접하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자동반사적으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나서는 사람, 자신의 정당함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 사람, 자기 선택이 어떤 한계도 가지지 않는다고 진정으로 착각하는 사람,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 흥분해서 떠들어대길 즐기는 사람은 보통 2인자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1인자는 설사 나르시시스트라 해도 역설적으로 2인자 광신도만큼 자기 주장을 맹신하지 않는다. 남의 맹신을 어떻게 내게 이익이 되게끔 이용할지에 대한 계획을 구상할 뿐이며, 기획자는 일말의 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광신도만큼 흥분하지 못한다. 자기가 남을 속이기 위해 만든 교리를 스스로 100% 믿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사용 언어 차이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어떤 분야를 본인이 직접 연구하는 전문가는 아는 것이 많아도 100% 확신에 찬 가치평가나 예측을 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전문가가 확신에 찬 말을 쉽게 뱉는다. 전문가는 "다음 분기엔 반드시 경기 침체가 오게 돼 있어. 그게 상식이야. 똑똑한 사람 중에 그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과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은 광신도 비전문가가 즐겨 하는 말이다. 전문가가 우아하고 교양있어서 말조심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연구를 하기 때문에 현실의 복잡함을 알아서 확신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완벽한 숭배대상을 가지고 있는 광신도는 그 완벽한 존재가 내려준 정답을 놓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분석하고 판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주장에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일상 생활 속에서 광신도와는 그 어떤 논의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교주보다 광신도가 더 서열이 낮으니까 만만해 보여서 설득이 쉬울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광신도는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사고가 경직되어 있으며, 그래서 더 위험하다. 이들은 전체 그림을 못 보는 데다가 종종 지나치게 흥분해서 심지어 그들의 교주조차 원치 않는 큰 사단을 일으키기도 한다. 때문에 어떤 집단과 거래를 해야 한다면, 어디까지나 입장 선회의 결정권이 있는 우두머리와 해야 한다.
꼭 특정 집단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부탁하거나 자신을 어필하려 할 때 서열이 낮고 자존감이 낮고 주체성이 없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높은 사람을 택하는 편이 좋다. 자기 생각과 행동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자들에게 상황 변화를 요구해봤자 그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그들의 인지적 혼란과 신앙 증명 욕구가 당신에 대한 분노로 발화되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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