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내 부모는 내게 기대가 낮은 것일까 높은 것일까 본문
A씨는 부모님과 살던 미성년자 시절에 사교육을 받아 본 일이 없다. 당연히 이는 주변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보육원에서조차 원생들에게 원하는 학원을 하나 정도는 보내주는 시대인데 A씨는 어린 시절에 흔하게 다니는 피아노나 태권도 학원조차도 다녀본 일이 없다. A씨의 부모가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습관적으로 말하는 '돈이 없다'는 이유 외에도, 교육은 공교육만으로 충분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내세우기도 했다.
또한 A씨의 부모는 A씨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늘 최악의 경우만을 상정하며 A씨가 '잘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돈을 아끼는 게 최선이라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돈 많이 들여서 교육시켰는데 바닥권이면 돈만 아깝잖아."
"피아노 가르치면 뭐해? 내가 본 어떤 애는 몇 년 동안 학원 값만 날리고 제대로 치는 것도 없더라."
"너 하는 꼴을 보면 딱 그짝 되게 생겼어."
그러나 A씨는 그에 대해 늘 최악의 상상만을 하는 부모의 우려와 달리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늘 시큰둥한 부모였지만 대학 합격을 한 날만큼은 A씨도 부모가 놀라워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합격 소식을 들은 부모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A씨의 부모는 놀라지도, 달가워하지도 않고 따분한 표정으로 A씨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정도는 기본 아니니?"
늘 자신의 성적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비관하던 부모가 갑자기 기준을 다르게 잡는 것에 놀란 A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 반응을 본 A씨의 부모는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설마 네가 그 정도면 꽤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
칭찬받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적 서운함은 둘째 문제였다. A씨는 언제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바닥'만을 상상하며 대비하던 부모가 갑자기 '상위권 진학이 기본'이라고 말하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이런 혼란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집에서 부모 돈과 밥을 축내는 백수 자식'에 대한 가상의 비난을 듣고 자란 A씨는 또래보다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게 된 자신의 모습에 부모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놀랄 것을 기대했지만 이에 대한 부모의 반응 역시 대학 진학 때와 비슷했다.
"그건 기본 중 기본이야. 너 정도도 안 되는 애가 어디 있다고 그러니?"
A씨는 이제 모르겠다. 부모가 자신의 능력을 못 믿고 기대치가 너무 낮아 늘 최악의 상상만을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거꾸로 나쁜 상황은 상상조차 못 하겠다는 듯 좋은 게 '기본'이라고 말할 때의 부모는 자신에게 대해 기대가 너무 높아 문제인 것 같다. 그의 부모는 대체 어느 쪽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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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A씨 사례에서 부모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인 '골 포스트 옮기기'를 하고 있다. 골대 옮기기란 말 그대로 정해진 골대에 골을 넣었더니 갑자기 골대는 그곳이 아니었다며 득점을 취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A씨는 부모가 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부정적 시나리오만 펼치고 그것을 기초로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부모가 상상하던 시나리오보다 나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만 증명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부모는 A씨의 성취 앞에서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기준을 바꿔버렸다. A씨가 자신이 부모가 늘 말하던 '최악'이 아님을 증명하자 부모는 '그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냐',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이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끔찍한 최악의 상황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되어버리고, A씨의 성취가 새로운 기본 마지노선이 되어 버렸다.
이중잣대와도 통하는 이 골 포스트 옮기기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내세우던 기존의 기준으로 더 이상 상대방을 통제할 수 없게 될 때 사용하는 전략이다. A씨의 부모는 늘 A씨가 '최악'이자 '바닥' 상태에 떨어질 가능성이 문제라고 하며 이를 빌미로 A씨에게 투입되는 경제적 자원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A씨가 자신이 최악이 아님을 증명해내 그러한 기준이 설득력을 잃게 되자 예고도 설명도 없이 갑자기 기준을 바꾸어 A씨의 성취를 마치 당연히 기대했던 것으로 태도를 전환했다.
나르시시스트가 골 포스트를 옮기는 이유는 자신이 언제나 옳아야만 하는 나르시시스트 특성상 자신이 내세우던 기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하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성취를 인정하거나 보상을 해 주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언제나 상대방을 엄격한 잣대로 비난하거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몹시 졸라대지만, 막상 상대방이 자신의 잣대를 충족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요구를 딱 맞춰 들어주어도 만족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반응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후려치거나 트집을 잡거나 전혀 딴 소리를 하며 과거의 기준을 부정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거나 고마워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못할 거라는 전제 하에 계약서를 썼는데 막상 계약을 이행해야 할 상황이 오자 그게 싫어 계약서 조건 내용을 몰래 위조하는 행위와도 같다.
나르시시스트의 골 포스트 옮기기에는 한계가 없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에게 통제권을 넘겨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상대가 기를 쓰고 모든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고 들어줘도 계속해서 골 포스트를 옮긴다. 상대가 '이제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고 성취감을 느끼거나 마무리를 통해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착취 대상이 유능할수록 오히려 나르시시스트 착취자의 요구는 지나친 것을 넘어서 엽기적인 수준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물리적 필요에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요구가 아니라 타인을 통제하고 조종한다는 만족감을 위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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