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스케이프 고트의 착각 - 용도가 있으면 사랑받는다 본문
자식이 자신에게 이익 또는 즐거움이 되는지에 따라 조건부로 애정을 베푸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 여부를 조건부로 여기게 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부모의 태도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 또한 자신을 그렇게 대할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실용적 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으면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송구스러워하는 듯한 비굴한 태도를 가지게 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길들여진 스케이프 고트는 언제 어디에서든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기울인다. 남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챙겨주거나, 적어도 그러는 척이라도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다. 흔히 가정 상황이 어렵거나 부모가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어릴 때부터 철이 일찍 들었다며 칭찬받는 아이들은 이러한 과잉 적응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불안정한 조건부 애정을 무기 삼아 휘두르며 아이를 과잉 적응시키는 것을 훈육으로 포장 또는 오해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부모는 본인을 어떻게든 '쓸모있는' 존재로 어필해 살아남고자 하는 아이들의 생존 본능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유리하게 활용하고, 사회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살아남기 위해 부모의 반응에 따라 온갖 재주를 부리는 아이들을 '철들었다', '효자/효녀다'라는 칭찬으로 세뇌하고 조종한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이런 상황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냥 '누구나 당연히 쓸모없는 사람보다 쓸모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면 당연히 더 사랑받는다'는 식의 단편적인 생각으로 과잉 적응 노력을 정당화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쓸모있는 사람이 되면 사랑받는다는 명제는 그냥 틀린 명제이다. 애초에 자신이 만든 생명체이므로 적어도 미성년자 기간에는 무조건적 애정을 통해 자식에게 기본 자존감을 심어주어야 할 부모 - 자식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심지어 사회에서의 일반적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쓸모가 있으면 써먹히기는 하겠지만 애정이나 존중의 대상이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쓸모'가 자신의 '존재 가치'와 동일하다는 믿음 하에 과잉 적응 노력을 하면 이것이 주변인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쳐 진짜 도구적으로만 활용당할 위험성만 높아진다. 기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존중이나 애정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냉장고나 자판기도 존중과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실질적으로 하나도 쓸모가 없는데도 알아서 미칠 듯한 숭배와 사랑을 갖다바치는 대표적인 대상으로 연예인이 있다.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조공을 바친다고 해서 팬의 학업이나 생업에 긍정적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사실은 시간과 돈만 소모될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관심을 쏟는 이유는 그 대상의 매력 때문이다. 연예인이 무언가 대단한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가 나에게 실용적으로 도움될 게 없음에도 애정 공세를 퍼부으며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즉, 존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이들은 굳이 기능을 증명해보이지 않아도 타인들이 이미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심리적 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존중과 애정이 자동적으로 뒤따른다. 이와 반대로 실용적인 기능은 있지만 전혀 대단치 않아 보이는 존재, 나에게 존재 자체로 어떤 심리적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초라한 존재는 경멸의 대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에 현재 내가 의존하고 있고, 없어지면 크게 불편해진다 해도 그 사실이 없는 애정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도리어 자신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위장하고 싶어 상대를 더욱 심하게 경멸하고 학대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자신의 '쓸모'를 남들에게 증명하고자 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남들 앞에서 스스로를 '을'로 자처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무의식중에 이러한 서열을 인지하게 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알아서 잘 보이려 과잉 적응하는 사람은 서열이 아래쪽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존중과 애정을 받지 못한다. 그 '쓸모'로 인해 옆에 끼고 계속 사용하려 들 수는 있겠으나 이는 그냥 가구나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태도와 다름없다. 아무리 필수적인 용도라 해도 함께 하는 동안 좋은 냉장고 이상의 취급을 받을 수 없으며, 대체품이 나타나면 가차없이 버려질 수밖에 없다. 연애 관계에서 '헌신하면 헌신짝된다'는 속설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에는 덜해졌겠지만 옛날 한국 여성들이 특히 많이 사용하던 조강지처/개념녀 내조 전략이 비참하게 실패하고 배신당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존중과 애정은 거의 절대적으로 자신과 최소한 동급의 존재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향한다. '하찮은 존재'로 분류된 이에게 자신의 진심을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고 보면 된다. 제아무리 가족이니 친척이니 친구니 하는 관계명으로 묶여있어도 예외는 없다.
일반인들도 그럴진대, 특히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존재 자체로 나르시시스트의 서열을 압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 쓸모도 없어보이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다. 괜히 쓸모있어 보였다가는 평생 노예계약으로 묶이거나 스토킹을 당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 자라 끊임없이 사방에 자신의 쓸모를 어필하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된 사람은 자칫 성인이 된 이후 부모에게서 벗어나더라도 다른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사냥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근본 해결책은 자신의 용도가 아닌 존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신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보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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