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나르시시즘 (74)
흙멘탈리스트
결혼과 출산을 주변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한 부부가 있었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자 이 젊은 부부는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부모가 열을 올리고 아이를 잡는 만큼 아이의 신경은 온통 그런 부모의 통제를 최대한 피하고 도망다니는 데 쏠리게 됐다. 부모와 완전히 동상이몽이 된 아이를 두고 부모는 속이 터져나갔고, 그들은 어느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답답한 심정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도대체가 애가 세상을 몰라. 부모가 죽도록 고생하면 뭐해. 진짜 학생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노력해서 취업하고 죽도록 자식 새끼 먹여살리자고 뛰어다니면 뭐하냐고! 그 새끼는 하나도 몰라!" 순간 친구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가 이내 불가항력..
"시닉(cynic)은 모든 것의 액면가(price)를 알고 있으면서 그 어느 것의 가치(value)도 모르는 사람이다." 무차별적인 시니컬함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글귀이다(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시큰둥할 수도 있고, 별로 미덥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시니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만사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그리고 자동 반사적으로 나오는 시큰둥함과 시니컬함은 대개 자신의 무능력, 무기력, 희망 없음에 대한 가장 쉽고 효과가 좋은 투사이다. 막말로 자기 인생이 볼 장 다 봤으니 모든 게 별 볼일 없고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인데 이런 시큰둥함과 시니컬함을 잘만 포장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현명함, 깨달..
사람은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일면 보수적인 태도를 장착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 먹는 것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보수성은 본질적으로 흔히 말하는 정치적 보수성과는 좀 차이가 있다. 물론 정치에서의 보수와 진보가 개인 일상 생활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아주 연관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젊었을 때 창조론의 공교육 커리큘럼 진출을 반대하고 동성 결혼에 찬성하던 사람이(즉, 미국 민주당 포지션) 갑자기 어느날 나이 마흔/오십/환갑을 먹었다고 의견을 정반대로 돌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이를 먹어서 보수화된다는 것은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나이를 먹으면 기본적으로 사고가 패턴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핵심은 사고 내용이 아니라 '패턴화'에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여 습관화된 뇌의 경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의거해서 무언가를 행하거나, 또는 강박적인 시도를 멈출 수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반드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만 투자를 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투자'는 특별한 의미는 아니다. 무언가를 한 번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어떤 대상이나 목표에 시선이 가고, 그것을 원하게 되고, 시도하는 모든 과정에는 시간, 감정, 에너지가 들어간다. 아무리 가벼운 투자도 여전히 투자이며, 따라서 모든 투자에 수반되는 심리적 현상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일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취할 때, 이는 적어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