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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
틀딱이라 생생하게 기억하는 10여년 전 한국 사회 분위기 중 하나로 스티브 잡스에 대한 숭배 열풍이 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숭배와 우상화는 한국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니고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는 했지만 모든 트렌드가 그렇듯이 로컬화되었을 때는 그 지역만의 새로운 맥락과 특색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스티브 잡스 숭배 열풍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적이었던 스티브 잡스 숭배 열풍에 가미된 한국만의 로컬 맥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삼성 vs 애플'의 대립 구도이다. 요즘에는 많이 안 쓰이는 말인 듯하지만 당시에는 애플 제품 지지자들을 '앱등이'로, 반대로 삼성 제품 지지자들을 '삼엽충'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당시 삼성과 애플의 법정 공방으로 인해 더 불이 붙었던 이 대립 구도에서 ..
흔히 사람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비록 목숨의 철학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할지언정, 목숨의 물리적 속성을 정량 측정할 수 있는 단위는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여명이 50년 남은 상태에서 1년의 시간을 어딘가에 투자했다면, 이것은 자기 목숨의 1/50을 투자한 것이나 다름없다. 길을 지나가다가 '도를 아십니까'를 피하는 데 10분을 낭비했다? 그렇다면 목숨의 1/2,628,000을 낭비한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내 목숨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단위이다. 시간은 모두가 인정하는 중요 자원인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킬링 타임'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자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10분의 시간'이 아니라 '1..
한국에서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통계상으로 명확히 드러나던 남아 선호 사상이 사라질 때 즈음부터 이른바 '딸이 좋다'는 식의 여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중장년층 이상의 나이든 계층에서 먼저 퍼져나간 '딸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트렌드는 대개 딸의 높은 '공감 능력'을 그 이유로 삼는다. 딸은 아들에 비해 공감 능력이 높고, 따라서 부모를 애틋하게 여기며 세심하게 보살펴 준다는 것이다. 성별에 근거해 특정 성별만이 '공감 능력이 높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문제이고, 그런 기대를 가지고 특정 성별의 자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한국 부모식 나르시시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식을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용도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방적인 '공감' 요구는..
대형 클라이언트로부터 계약을 따내야 하는 한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회사는 적절한 스펙과 경험을 갖춘 A씨를 해당 업무의 추진 담당자로 결정했다. 이제 A씨의 임무는 클라이언트에게서 계약을 따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회사는 물론, 해당 업무를 담당할 자신의 개인적 능력도 설득력 있게 어필해야 한다. A씨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 중인 다른 회사의 다른 담당자들보다 자신이 더 해당 업무에 적절하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A씨가 느닷없이 겸손하게 군답시고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자신이 아닌 경쟁 업체 담당자의 능력을 상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면? 클라이언트가 '당신이 정말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