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자녀 살해범보다는 보육원이 훨씬 더 나은 보호자이다 본문

흙멘탈리스트/코멘터리

자녀 살해범보다는 보육원이 훨씬 더 나은 보호자이다

Dirt Mentalist 2022. 7. 4. 11:26
반응형

아무리 입 아프게 수십 번을 떠들어도 한국의 국평오 기성세대가 절대로 입력하지 못하는 사실 중 하나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며, 공적인 시스템이나 제도 부분에서 웬만한 타 선진국 못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 행정 시스템이나 집행 면에서 한국만큼 잘 돌아가는 나라는 지구상에 몇 되지 않는다. 특출나게 한국이 뒤쳐져 있는 일부 영역이 없지는 않으나(ex. 장애인 복지) 대체적으로 한국에서 유지되고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한국 사회의 공적 복지 시스템은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한 약자 보호/복지/돌봄 기능의 최저 수준을 이미 한참 추월한지 오래다.

 

이를 부모-자식 관계에 대입해보면, 형편없는 부모보다 보육원이 나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더이상 자식을 살해한 부모를 두고 '동반자살'이라 표현하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발전이지만, 살해/자살 사건이 돼 버린 완도 가족 실종 사건 뉴스에 대한 반응을 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아마도 중장년 이상)은 아직도 보육원을 6.25 전쟁 시절의 '고아원'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도 부모가 없으면 어차피 비참하게 살 텐데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자기들이 키워줄 것도 아니고 어차피 고아원 보내야 하는데 부모 욕할 자격은 누구도 없다' 등의 일부 반응에서는 아직도 부모 잃은 아이의 보육원행을 지옥행 또는 인생 끝장으로 보는 정서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족 건사는 고사하고 제앞가림도 못해 자녀를 살해할 정도의 부모라면, 친부모보다 보육원이 더 나은 보호자이다. 단언컨대 2022년 한국의 보육원은 경제적/정신적으로 무능력한데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겨 순장시켜버린 중세적 사고방식의 부모보다 더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는 곳이다. 요즘의 보육원 아이들은 굶거나 헌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며, 또래 아이들의 평균적 생활에 맞춰주기 위한 정책이 적용되기 때문에 학원비와 용돈도 지원받는다. 정부 뿐 아니라 다른 민간 단체에서도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보육원은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대기업의 자선 지원, 종교 단체의 봉사, 자원활동가들의 기여 등이 집중되는 곳이다. 아이들은 기본 의식주만 겨우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도 받고 생일 선물도 받는다. 사실 친부모와 살면서도 물질적으로는 보육원보다 훨씬 더 못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보육원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 중에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며, 개중에는 현실을 알려줘도 반신반의하거나 심지어 거짓말하지 말라며 '너 그알같은 데 나오는 비리 고아원 원장이랑 짜고 치는 직원이지? 니네 고아원 실태 쉴드치려고 거짓말하고 다니는 거지?' 같은 어이없는 급발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하물며 감옥도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의 감옥과 노르웨이의 감옥은 전혀 같지 않고, 전자에 비하면 후자는 호캉스 소리를 듣는 곳이다. 그렇다면 6.25 시절의 한국 '고아원'과 2022년 OECD 가입국인 한국의 보육원이 천양지차로 다른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표준화된 아동 복지에 필요한 모든 물질적인 것을 제공해준다는 이유만으로 보육원이 완벽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개별 상황과 맥락에 대한 판단 없이 생물학적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하면 무조건 아이가 불행하거나, 심지어 인간 이하의 삶을 살 것이라는 예단은 비현실적이고 오만한 부모 중심적 시각이라는 것이다. 아동 인권의 개념이 없었던 전근대 사회라면 모를까, 현대 선진국의 보육원은 자녀 살해범보다는 명백히 나은 대안이다. 생물학적 부모라는 것이 그 자체로 자녀에게 최적의 보호자라는 뜻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 많다. 보육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집중적으로 1:1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서적 결핍이고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존재하는 가정이 더 유리한 것이 맞지만, 부모의 정신 상태가 불량할 경우에는 이게 오히려 화근이 되기도 한다. 생물학적 부모이기 때문에 더 쉽게 가지게 되는 자녀에 대한 소유 의식이 최악의 사태를 불러오는 것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를 명확하게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이 있다. 2020년 경남 창원에서 50대 초반과 20대 초반의 모녀가 밀실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이들 모녀는 어이없게도 거동이 불가능한 노인들 마냥 무기력증으로 야기된 열사병 증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안 벽에 남은 기이한 그림들은 엄마가 정신 이상 수준으로 딸을 통제하며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런데 사실 딸은 엄마와 쭉 함께 살았던 것이 아니고 미성년 시절에는 보육원에서 자랐으며, 만 18세가 되어 보육원에서 나오게 되자 생모와 함께 살게 된 상황이었다. 기가 막힌 것은 보육원 시절에는 본인이 원하는 미술학원도 다니며 교우관계도 원활하게 유지하고 활발한 외부 활동을 했던 딸이 오히려 친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집안에 갇혀 무기력증에 빠지고 아무것도 못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웃들이 엄마의 존재는 알았어도 딸의 존재는 알지 못했을 정도였고, 딸은 죽기 전 어느 시점에는 심지어 자신이 자라던 보육원 시설로 다시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 사건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단칸방의 유령들'이라는 애매한 콘셉트로 다른 사건들과 묶여 짧게 다뤄지면서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을 대표하는 사례로 소개됐지만, 사실 주민센터에서 내민 손길도 엄마 쪽에서 거부했던 상황이라 이 사건의 원인을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사건은 자격 미달인 친부모를 보호자로 신뢰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또한 이 사건은 엄마의 딸에 대한 감정과 심리가 한국 부모의 나르시시즘을 해부 교과서마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와 깊이 연관된 병리적 심리의 메커니즘을 잘 드러낸다.)

 

제대로 된 보호자를 갖지 못한 아이들은 모두 힘겨운 삶을 산다. 보호자가 없어도 힘겹고, 보호자가 자격 미달이어도 힘들다. 한국이 6.25 시절처럼 내전 상태의 최빈국이라면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 단연 최악의 상황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한국의 평균 발전 속도와 발맞추기를 실패한 부모라면, 보육원보다 못할 수 있다. 경제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과 아이의 운명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정신나간 부모는 분명히 보육원보다 못하다. 자신이 불행하면 자식도 불행해야 하고, 자신이 죽으면 자식도 같이 죽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과 달리, 그들의 자녀를 위한 나라는 있다. 그러나 자녀 살해범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