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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행동의 이면에는 합리적 근거나 의미가 아니라 기능이 있다

Dirt Mentalist 2023. 3. 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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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누구나 자기가 꽤나 똑똑하고 합리적이며 주관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사회화된 인간은 누구나 큰 틀에서 순응주의자의 면모를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반항아에 혁명가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사회화란 게 그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근거도 없이 수많은 약속과 기호를 주입받는다. 그것을 제대로 주입받아야 다른 구성원과 소통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언어부터가 그렇다. 사과는 왜 '사과'라고 해야 하는가? 언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자의성이라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자의적이라는 것은 막말로 그 뒤에 개뿔 아무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사과가 사과가 된 과정을 그럴싸하게 설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과가 반드시 사과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이유나 근거 따위는 없다. 그딴 게 있었다면 사과는 우주 어디에서도 반드시 사과여야 하지만 태평양만 건너도 사과는 금세 애플로 변한다.

 

인간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 중 하나인 언어부터가 자의성으로 꽉 차 있는데 자기가 하는 언행이나 의사결정 모두가 합리성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그냥 착각이자 오만이다. 당신이 하는 모든 언행 뒤에 합리적 근거 또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가? 자신은 너무 똑똑해서 합리적인 이유나 의미가 없는 행동 따윈 안 할 것 같은가? 글쎄,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대개 합리적 근거나 의미가 아니라 그 언행의 기능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행동이 그 사람의 인생이나 정체성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모종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당연히 상황마다 천차만별이며, 꼭 좋은 역할이라는 법도 없다.

 

이를테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크 푸드를 먹는다. 이와 같은 결정에 합리적 근거가 있는가? 정크 푸드를 먹어봤자 본인에게 해악을 끼치면 끼쳤지 도움이 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정크 푸드 섭취에는 당장의 감각적 보상이라는 기능이 있다. 결국 그 기능의 효과에 압도되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자기는 멍청하지 않아서 옳은 행동, 바른 행동, 쓸모있는 행동이 아니면 안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막상 일상을 뒤져보면 이런 형편없는 결정을 자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건 그냥 자기가 뉴스에 나올 만한 무언가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말일 뿐이다.

 

사과가 왜 사과여야 하느냐고, 나는 오늘부터 사과를 수박으로 부르련다 하며 사회에 저항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언어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가 자의성이라는 것이 상식임에도, 이런 저항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그런 저항이 기능적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 무조건적인 주입 때문이 맞다. 그럼에도 대부분 이런 건 별로 저항할 필요가 없거나, 저항해서는 안 될 종류의 주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순전히 사회적 기능을 너무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항 대상이 될 만한 주입의 종류는 따로 있을까? 그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그 경계는 명확하게 정해진 선이 아니며 사회적 합의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사회가 논쟁과 싸움으로 들끓는 것이다. 

 

MBC에서 만든 선정적인 사이비 다큐가 화제인 듯한데 볼 생각은 없으나, 사이비 종교나 사기 사건 같은 것이 화제가 될 때마다 '나는 절대 저런 데 안 넘어간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대거 눈에 띈다. 사실 이런 오만은 오히려 사람을 기만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미 언급했듯이 모든 사회화된 인간은 이미 어릴 때부터 엄청난 무조건적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존재들이다. 제아무리 북유럽 핀란드식 교육을 받았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지구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강력하게 사회적 순응성에 통제당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이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라면 의외로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자신은 절대 주입이나 세뇌 따위 안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사회적 순응성 알고리즘만 제대로 이용하면 세뇌는 의외로 수월하다.

 

왜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믿고, 어떤 사람은 이슬람교를 믿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아이돌 덕질에서 사는 재미를 찾고,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들의 모임에 계속 습관적으로 나가고, 객관적으로 악당이 분명한 인간들과 계속해서 관계를 지속하는가?

모든 것은 노출도와 상황 조건이 결정한다. 그들은 그런 믿음을 가지도록, 그런 언행을 하고, 그런 결정을 하도록 하는 상황에 노출되었고, 그 조건 속에서 특정 종교가, 아이돌이, 친구가, 악당이 그들의 인생이나 정체성에서 어떤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기능은 의식주 해결일 수도 있고, 무리에 속하려는 소속감 충족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가치관 충족일 수도 있고, 무언가로부터의 회피일 수도 있고, 존재론적 위기 극복일 수도 있고, 단순 재미나 자극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일상을 채워주는 오래된 습관일 수도 있다. 그 기능 충족 자체를 포기하거나 해당 기능을 담당할 다른 대체물을 찾지 못하면 사람은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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