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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엔 다 그랬어!" -> 대부분 뻥입니다

Dirt Mentalist 2022. 12. 2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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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어권 게시판에서 목격한, 수십 년째 지금 시즌을 대표하는 얼굴인 맥컬리 컬킨에 대한 대화. 아직 생존해 있고 인생이 많이 남은 사람에게 어떤 결론이 내려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현재 시점에서 맥컬리 컬킨의 커리어와 개인 인생 여정은 비극적인 스토리에 가까운 것으로 회자된다.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아역 스타들의 비극적 사례에 대한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대개 부모에서 출발해 할리우드의 권력자 및 시스템까지 학대자의 대열에 동참해 아역 스타들을 난도질하는 플롯이다.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데 옛날에는 아동 권리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는 달랐다. 지금의 잣대로만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모든 얘기를 학대로 친다면 옛날에는 다 아동 학대를 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자 다른 누군가의 반박.

 

"나는 이미 1970년대에 부모가 된 사람인데, 1970년대 사람들도 아동 학대 개념이 있었고 그게 뭔지도 알았다. 지금 여기에서 나오는 사례는 그 당시에도 아동 학대가 맞았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주관적인 '세계관'의 차이에서 나온다. 같은 사회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지고 사는 것 같아도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 개인적 경험, 가치관, 지향 등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사실 1970년대가 '아동 학대' 개념이 있었던 시대냐 없었던 시대냐라는 질문에 이분법적으로 어느 한 쪽을 택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지금 시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 구성원마다 수준과 환경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을 사는 사람들한테야 지금 사회가 최신판 모습이니 1970년대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것처럼, 심지어는 완벽하게 그때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미 진도 다 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2070년에 바라본 2022년도 정말 그런 모습일까?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사회가 불완전, 아니 엉망진창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산더미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은 여전하다. 2070년에 2022년을 보면 동일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2022년에는 아동 학대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vs "무슨 소리냐. 2022년에도 아동 학대는 문제였다."

 

전자와 같은 어떤 개념의 인기 또는 대세 여부가 사회 가치관을 대표한다고 판단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개념의 논리적 발전 정도가 사회 가치관을 대표한다고 판단하는 방식이다. 보통 상대적 비교에 민감하고 주변 환경을 생각없이 따를수록 사회 가치관을 전자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막말로 주변에서 막 뭐라 하거나 경찰이 몽둥이를 들고 오지 않으면 뭐가 잘못인지 판단이 안 되고 사회 가치관이 그걸 허락한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이를 1970년대에 적용해보자. 1970년대가 아무리 반백년 전 고릿적 시절이라 한들 그 시대에 지금의 현대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과 아예 다른 체계를 가졌을 테니 지금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오해이거나 왜곡이다. 중세 시대 정도라면 또 모르겠지만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수명 기간 동안에 '정말 아무렇지 않고 괜찮은 줄 알았던 게 세상이 갑자기 뒤집혀서 죽을 죄로 변했다'는 일 같은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지금 문제가 되는 일은 50년 전에 저질렀다 해도 최소한 스스로 찔리는 구석 정도는 있었을 일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 시절엔 괜찮았다'는 말은 진짜 그 행동이 그 시절에 썩 괜찮은 행동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 사회적으로 법 집행이 제대로 되기엔 사회 권력 구도가 따라주지 못해 '근본적으로 그 시절에도 문제가 맞긴 했지만 문제가 공론화되어 책임을 지거나 피해를 볼 염려는 없어서 괜찮았다'는 말로 들어야 한다.

 

나이를 꽤 먹다 보니 동세대 인간들이 젊은이들에게 "우리 땐 다 그랬어! 그땐 문제가 아니었어!" 이 따위 말들을 하는 경우를 점점 많이 보게 되어 기가 막혀서 적어봤다. 사회는 분명히 변하며, 수십 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지금 시대에는 스마트폰이 지금만큼 일반화되지 않았던 20년 전하고만 비교해도 인간의 종이 달라진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수단 및 인프라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외관상의 불연속성을 정신적 요소 및 근본 가치관의 불연속성과 동치시켜 야바위를 치는 인간은 사기꾼이거나 돌대가리이다. 그런 말을 하는 인간들은 그 옛날에도 썩은 인간들이었거나, 의견 존중 따위를 해 줄 필요가 없는 밑바닥 멍청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사회적 인프라의 미비로 인해 원래 자신들의 썩은 행동 때문에 치뤘어야 할 기회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운 좋게 넘어갔던 것을 '괜찮은 줄 알았다', '그 시대엔 그런 개념이 없었다', '다들 그랬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자기 개인의 흑역사를 시대 탓으로 떠넘기고 또래 중 멀쩡했떤 사람들에게까지도 같이 부담하자고 우기는 모양새이다. 때로는 이런 말에 젊은이들도 깜빡 속아넘어가(실제 살아보질 않았으니 이해는 간다) 이전 시대에 무슨 기계적 문화상대주의 잣대 같은 것을 적용해 외계 행성 문화를 관찰하듯 분절적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목격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고작 수십 년의 기간으로 사회가 그렇게 불연속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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