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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홍 사건이 알려주는 것 - 가부장제가 나르시시즘의 결과물인 이유

Dirt Mentalist 2022. 10. 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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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부장제는 남아선호사상과 관련되어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와 관련해 생각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다른 현상이 있다. 바로 동성의 자녀만 두었을 경우, 또는 자녀의 수가 많아서 아들과 딸이 모두 여러 명일 경우에 동성 자녀 간에도 차별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가부장제의 픽은 거의 언제나 장남이며 이는 서구권이나 한국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사하다. 제사, 상속, 가업 승계 등 구체적인 수단과 맥락에서 차이를 보일지언정 가장(아버지)의 바톤을 장남이 이어받는다는 구조는 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당연히 같은 아들이라도 차남 이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장남에게 장애가 있다거나 심각한 결함이 있다거나 가장의 취향이 조금 독특하다거나 등등) 장남과 차별 대우를 받게 되며 현 가장의 권위를 물려받지 못한다.

 

또한 슬하에 딸만 두었을 경우, 딸 중 한 명을 일종의 명예 아들로 만들어 한 명만을 편애하고 다른 쪽을 차별하는 경우도 많다. 또는 딸과 아들이 모두 있지만 위에 언급한 장애, 결함 등등의 사례로 장남의 사회적 경쟁력이 심히 의심되는 경우에도 딸과 아들에 대한 대우가 뒤집힐 수 있다(도널드 트럼프의 최애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아닌 이방카 트럼프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는 현대에 와서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사라지자 가능해진 현상으로, 생물학적 성별에 의한 선호 경향을 뒤집을 정도로 사회적 부가가치를 증명한 딸에게 가끔 주어지는 지위이다(주의: 그러나 능력을 증명했다고 해서 늘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능력의 뛰어남 때문에 정해진 서열의 공고화가 어려워 더욱 미움받는 경우도 있으니 능력->인정의 공식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장남이란 존재가 없거나, 실제 장남이 장남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영 어려울 경우에 상징적인 장남을 창조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자녀 구성이 정확히 1남 1녀라서 성별만으로 골든차일드와 스케이프고트를 결정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닐 때,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구분으로 실제적 또는 상징적 '장남'만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최애픽으로 삼는 것은 남아선호를 비롯한 자녀 차별대우가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명백히 가장과 가문의 사회적 영속성을 인식한 의도적 결정이자 인위적 규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부장제 운영 원칙 중 가장 중요한 '장남 승계'는 생물학적 유전자 계승의 본능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당연한 이야기지만 유전자는 장남에게나 차남에게나, 아들에게나 딸에게나 모두 동일하게 이어진다), 성별과 출생 순서로만 결정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 어떤 합리나 논리와도 무관하다.

 

장남 승계의 원칙은 사실 가장 개인의 정체성 영속 욕구, 막말로 '내가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구를 제도화한 것이다. 성을 물려주고, 심지어 이름까지 물려주는(서양권의 주니어라는 이름은 사실 완벽하게 동일한 아버지-아들의 이름을 구별하기 위해 붙이는 비공식 호칭으로 장남에게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는 나라는 개체가 생물학적 죽음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자식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영원히 살아남겠다는 지독한 개체 보존 욕구와 정신승리의 반영이다. 이는 유전자 단위로 흔적을 남기겠다거나 어떤 무형적 유산을 남기겠다는 욕구와는 다르다. 장남 승계는 딱 한 사람(장남)을 찍어 그에게 모든 것을 몰아줌으로써 가장 개체 고유의 정체성을 최대한 그대로 박제/보존/영속시키겠다는 욕구의 반영이다. 즉, '나는 영원할지어다'라는 가장의 나르시시즘을 제도화한 것이다. 

 

자신과 가장 유사한 개체를 분신처럼 만들어 영속 욕구를 충족하려면 선택과 집중은 필수이다. 제아무리 다른 자식들이 생물학적으로 동일하게 자신의 유전자를 나누어받았고, 사회적 능력도 출중하고, 장남에 비해 뒤지거나 덜 사랑받을 합당한 이유가 없어도 그들이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없는 것은 가부장제의 장남 승계가 가장 개인의 분신술로 공인된 관습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장 그럴싸한 분신을 만들려면 모든 것을 몰아줘야 하는 법이다. 자원을 박애주의적으로 공정하게 나눠주면 내가 남긴 유전자의 확산에 도움은 되지만, '나'라는 개체는 사라지고 아무리 '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자식들은 '나'와는 다른 개별 개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반드시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나'라는 개체가 그대로 영속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심각할수록, 자식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것 자체가 부모의 자아에 위협이 된다. 여러 명의 자녀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그들에게 동등한 투자를 할수록, 자신이라는 존재가 결국 흙으로 사라지고 후세대를 위한 거름이 될 것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대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직 한 명만이 자신을 승계할 분신이라고 여기고 나머지는 넘지 못할 서열을 이용해 통제해야만 나르시시즘적 욕망이 안전하게 충족된다. 이것이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그 어떤 경우에도 차별 대우를 멈출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그래봤자 아버지와 장남은 별개 인간이다. 장남이라고 해서 아버지를 더 닮는 것도 아니요, 장남이 자신을 계승하도록 해봤자 본인이 정말 불사신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건 그냥 자의적 정신승리이다. 결국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은 이렇게 허망하게 쓸데없는 제도와 문화에 목을 매도록 만든다. 오로지 장남을 나의 분신으로 여기고 거기에 모든 투자를 집중하는 것으로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겠다는 결정은, 유한한 존재로서 존재론적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인간이 자의적 해석과 도피를 감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문화가 아직도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나르시시즘이 한낱 특정인들의 문제도, 소셜 미디어에서 자뻑에 빠지는 젊은이들의 문제도 아니라 스스로를 용감하게 인정하고 대면하지 못하는 인간의 저열함과 비겁함이 만들어내는 보편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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