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라는 용어 본문
한 게시판을 구경하다가 본 광경. 누군가가 '딩크가 사회적 소수자'라는 표현을 쓰자 다른 누군가가 발작을 하기 시작한다. 대충 요지는 '어디 감히 사회적 소수자라는 용어를 아무데나 갖다 쓰느냐'는 것이다. 그들을 사회적 소수자라고 칭하는 것이 '다른 소수자를 모욕하는 것', '딩크는 자기들이 자기네 좋자고 한 결정인데 왜 그들을 사회적 소수자로 봐줘야 하느냐' 등등의 표현이 줄을 잇는다.
황당무계한 상황이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 이상한 한국어를 배운 것일까? 소수자는 말 그대로 사회에서 소수에 속하는 사람을 칭하는 용어일 뿐이다. 소수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말 그대로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할 것', 단 한 가지이다. 그런데 왜 이 단어가 무슨 훈장이라도 되듯 절대 상대에게 붙여줄 수 없다고 부들대는 사람들이 많을까? 정치적 지형에서 '소수자'와 많이 혼동되지만 원래의 의미는 상당히 다른 '약자'라는 표현 역시 거의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러니 요새는 저마다 '내가 소수자', '내가 약자'라는 타이틀을 달려고 쟁탈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소수자 취급, 약자 취급받는 게 강자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 괴현상이 여기저기에서 목격된다. 그래서 강자가 되기 위해 약자로 분류된 옆사람을 쥐어패며 네임태그 빼앗아들고 '내가 약자라고!' 하며 악을 쓴다. 언제나 현실이 예술을 앞서왔던 한국 사회답게 황당 부조리극을 실사화하는 것에도 역시 킹왕짱이다.
사회적 소수자는 문자 그대로 소수자, 약자는 말 그대로 권력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비교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유자녀 부부가 딩크보다 많으면 딩크는 부부 유형 면에서 소수자에 속하며,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도 남성에게 폭력을 당한다면 그 상황에서는 약자이다. 또한 테크니컬하게는 IQ 150 이상인 사람도 사회적 소수자이고, 특이 식성을 가진 사람도 사회적 소수자이다. 당연히 어떤 기준을 두고 사람들이 다수와 소수로 나뉠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경우에 따라 소수자는 특별한 개성으로 오히려 긍정적 주목을 받을 수도 있고, 디폴트 설정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가는 개별 사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 사이의 상호작용에는 공통점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학관계를 파악할 때 가치중립적으로 '소수자', '약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논리적이며 문제가 없다. 이건 그냥 팩트다. 이런 팩트 서술에 배알이 뒤틀리고 쌍심지를 켜고 싶어진다면 본인이 용어를 단지 용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대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586 세대 '좌파' 정치권이 소수자, 약자 카드를 먹버하는 방식과 온갖 시민단체를 이용해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정치권 양상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우기는 이들이 많겠지만 586 세대 '좌파' 정치권이 문제가 되는 핵심 이유는 그들이 소수자, 약자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명분만 먹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미향 등이 시민단체를 내세워 자기 잇속을 챙긴 뉴스 등을 보고, 사회에서 무작정 '내가 소수자!', '내가 약자!'라고 우기면 자동으로 쉽게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 판단한다면 이건 단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멍청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윤미향은 일본 성노예 피해자들이라는 소수자/약자를 겉으로만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명백히 정치권 대세이자 강자 세력이었던 586 세력의 일원으로서 성장한 것이다. 말 뿐인 명분이 정말로 내적 힘을 발휘해서 윤미향을 지금의 윤미향으로 만든 게 아니라, 실재하는 조직의 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세상에 소수자와 약자 포지션 자체가 이득이 되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다. 그건 그냥 수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싸움을 하는데 상대와 3:1로 싸우면 더 유리한가? 상대보다 힘이 약하면 유리한가? 결국 그게 유리하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주변인, 사회 여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내가 3:1로 싸우니까 불쌍하죠? 내 편 좀 들어주세요.' 이러는 전시성 전략 하나면 세상을 쉽게 살 수 있다고 망상을 하는 데서 비롯된다. 현실을 말하자면, 그런 전략이 잘 먹히는 경우보다는안 먹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이재명이나 윤미향 같은 명분 먹버의 달인들만 쳐다보면서 (겉으로는 욕하는 것 같지만) 무의식중에 부러워하다보니 그런 망상이 깃드는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명분의 내적 힘 또는 진정성이 정말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경우는 드물며, 약한 편이나 지는 편에 함께 서고자 하는 사람도 드물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속 편하게 이기는 편, 힘 센 편, 디폴트 편에 서고 싶어한다. 정말로 자신의 세계관에 현타를 가져올 수도 있는 불공정한 현실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586 좌파들은 그 세대의 문화적 대세를 장악하는 데 성공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그들 스스로가 약자/소수자였거나 약자/소수자를 제대로 대변한다는 진정성을 진짜로 인정받아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대중은 진정성을 따르는 게 아니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정성 있다고 인정받은 대세'를 따를 뿐이다. 이 말은 586 세대나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진정성과 성공은 그다지 인과관계가 깊지 않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말이다.
소수자/약자가 어떤 우월하거나 유리한 속성을 가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IQ 150 이상의 천재도 IQ 100짜리들의 집단에 가면 왕따당하고 도리어 바보 취급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 집단을 지배하는 주요 원리가 다수결이나 전체주의라면 특히 그렇다. IQ 150 이상이라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경우는 '머리가 좋아서'이지 그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그 자체로 유리해서가 아니다. 두 가지 정체성은 별개이다. 오히려 제아무리 개체로서 유리한 속성도 '소수자'로서의 역학관계에 말려들면 치명적인 지명수배 죄목이 되는 수가 있다.
'내가 왜 머리 좋은 사람 편들어 줘야 해?'
'내가 왜 나보다 잘 사는 사람 편들어 줘야 해?'
'내가 왜 나한테 도움도 안 되는 사람 편들어 줘야 해?'
아무도 편들어주라고 하지 않았다. '약자'로 공개 분류되면 온 세상이 편들어 줄 거라는 착각은 세상에 대한 무지와 극단적 자기연민의 조합에서 나온다. 때문에 누군가가 나보다 특정한 면에서 우월한(유리한) 속성을 가졌거나,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거나, 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사코 어떤 면에서도 소수자/약자가 아니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적당한 핑곗거리가 없다는 불안감을 '약자 대접'에 대한 환상으로 투사한 결과이다.
거지도 입은 거지가 얻어먹는다고, 세상은 소수자/약자와 관련되는 것을 웬만하면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입으로 뭐라 떠드는지는 무관하다) 따라서 그러한 카테고리에 속하게 되면 사회적 가용 자원 확보 면에서 크게 불리해진다. 몇몇 스타급 소시오패스의 사례만 보고 소수자/약자 정체성이 쉽게 사회적 프리패스가 된다는 주장은 망상에 가깝다. 애초에 '소수자/약자가 훨씬 대접받아서 유리하다' 따위의 인식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막말로 '강남은 집값이 비싸서 미움받지만 강북은 집값이 싸서 그럴 일이 없으니 강북에 사는 게 더 대접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를 소수자/약자 포지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적극적으로 편들어주고 열광해줄 필요 따위는 없다. 다만 분명히 정의상 소수자/약자에 속하는 정체성을 두고 단지 내가 편 들어주기 싫으니까 약자나 소수자가 아니라고 우기겠다는 건 얼토당토 않은 논리이다. 소수자, 약자라는 표현에 지나치게 얽혀버린 과도한 갬성과 혐오를 해결하려면 이 표현을 좀 더 가치중립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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