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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고령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Dirt Mentalist 2022. 3. 27.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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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으로 인해 한국이 심하게 말해 '소멸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한국의 소멸까지 목격할 가능성은 없어보이고, 다만 엄청난 초고령 사회를 경험하게 될 것은 자명해보인다. 이미 통계상 노인 인구의 20%부터 적용되는 '초고령 사회'의 정의에 도달하기까지 2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적극적인 이민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앞으로 노인 비율이 어디까지 늘어날지는 상상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고령 사회가 국가 경제 규모나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경제 규모나 수치 등이 아니라 실제 고령 사회가 사람들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경제 규모의 축소, 각종 의료 보험이나 연금의 지출 증가 등은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이며 사람들에게 제일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령자들로 넘쳐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다.

 

고령 사회에서 아동/청소년/청년층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여기에 변화가 있다면 아마 좋은 쪽일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요즘 아이를 많이 낳으면 애국자라는 말을 듣고 국가에서도 임산부와 신생아를 배려해주기 위한 정책 마련에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고령 사회가 되어 새 생명이 귀해지면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 대한 대우도 덩달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소리를 들었던 베이비붐 세대,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 쌔고 쌨어.' 소리를 들었던 에코 베이비붐 세대 등, 한마디로 싸구려 취급 받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저출생 시대의 청년층은 취업도 잘 될 것이고 어디에 가든 귀하고 비싼 존재로서 대접받을 거라는 예상이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

 

물론 노인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면 청년층의 취업률 자체는 높아질 것이고, 아무래도 젊은층이 귀하다 보니 일부 영역에서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대별로 갈리는 이해관계에서는 젊은층이 굉장히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니치 공략이 아닌 보편적 마케팅을 해야 하는 사업에서는 젊은이가 아닌 늙은이들의 정서와 편의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고, 정치에서도 쪽수가 많은 늙은이들의 이해관계부터 먼저 고려할 것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문화상품에서도 젊은이들의 취향을 공략한 작품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고 지자체 예산도 청년 정책이나 청년용 시설보다 노인 정책 및 노인용 시설에 우선 배정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생활 양식, 문화, 가치관 등에서도 젊은이들이 기존 방식을 밀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가 버거워질 것이다.

 

귀한 존재가 될수록 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귀금속 시장에서는 맞는 원리일 수 있지만, 사회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말해, 초고령 사회에서 어린이와 젊은이는 소수자가 된다. 소수자의 정체성이 사회 권력/지위/위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발해의 사례(소수의 고구려 유민이 지배층이었다던)는 그야말로 고대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얘기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이 다수결로 이루어지고, 기업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상대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쪽수가 딸리는 세대나 인종 집단은 언제나 사회 지분 쟁탈전에서 불리하다.

 

5년 전까지 '청년층'과 동의어로 여겨졌던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베이비 부머 세대와의 문화적 대치전에서 너무나도 무력했고 결국 뚜렷한 문화적 자취를 남기지 못한 채 Z세대에 밀려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정족수가 딸렸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 미국 문화나 음악의 역사를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들마저 '가장 위대한 밴드는 비틀스'라는 것을 무슨 상식인 양 외우고 다니고 그게 '정답'인 것처럼 착각하는 이유는 비틀스가 미국 (백인) 베이비 부머 세대의 영웅이라서 그렇다. 그들의 인구가 너무 많고, 그 뒷세대 중 누구도 그들의 쪽수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에 베이비 부머들이 계속 앵무새처럼 재생산하는 신화를 (사회 통념적으로는) 제압하지 못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현재 한국의 우/좌파를 상징하기도 하는 산업화 세대의 경제 신화와 586 세대의 정치/문화 신화는 앞으로도 도전다운 도전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시대에나 일정 비율로 나타나는 창의적인 소수의 개인은 이전 세대의 한계와 약점을 파악하겠지만, 이것이 사회 통념에까지 영향을 미쳐 전반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회의적이다. 한국은 여태까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비교적 빠른 사회였지만, 고령 사회로 접어들수록 한국은 이전과 달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문화의 발전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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