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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남 vs 설거지남 전쟁

Dirt Mentalist 2021. 11. 18.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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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웬만해서는 기본 생존이 위협받지 않고 의식주가 해결되어 있는 축복받은 시대와 환경에 태어났으면서,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며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미국인 학자인지 작가가 한 말이다. 

 

한때 한국인들은 서열 기준이 매우 확실하고 서열 이동은 매우 유동적이며 빠른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았다. 전쟁 시대에는 폭사하거나 아사하지 않은 자가 승리자였고, 학벌이 계급 이동의 주요 수단이던 때는 명문대 진학자가 승리자였다. 남아선호가 뚜렷하던 시절에는 아들이 많을수록 승리자였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낮았을 때에는 이민자가 승리자였다. 기준이 뚜렷하고 이동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람들의 획일적인 집착과 열망도 대단했다. 사람들은 인생을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레시피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레시피를 맞추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진 듯 자학과 자포자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속 성장 시대가 끝나고 한국이 명실상부 제1세계의 대표적인 선진국 중 하나가 되어 절대적 결핍이 많이 줄어들면서 그러한 기준은 더 이상 예전처럼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회적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기준에서 다소 벗어나게 살아도 생존에 크게 위협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내가 남보다 서열 상위라는 확신을 통해 생존에 안정감을 느끼고 삶의 활력을 느끼던 습성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뇌가 생존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는 메커니즘이 이렇게 실제 현실과 괴리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모두의 생존이 보장된 안전한 세상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찾지 못해 오히려 근거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누군가가 강제한 기준에 따라 서열을 조장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상황에서는 도리어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서열을 정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단일 기준으로 한사코 서열을 정해서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를 가려야 한다는 강박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실제 사는 모습은 꽤 다양해졌지만, 아직은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보다는 다들 자기 중심으로 짜여진 서열 기준이 맞다고 싸우는 모습이 더 많다.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에 대한 증거가 예전처럼 명확하지 않으니, 주관적 해석이 끝없이 이어지고 정신승리가 판을 친다.

 

설거지남 논쟁 역시 해석을 놓고 벌이는 기혼과 비혼의 전쟁이다. 자의적 해석을 통해 어떻게든 서로 '네가 루저'라고 낙인찍기 위한 실체 없는 논쟁이다. 실제 삶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해석을 붙들고 어떻게든 서열 결론을 내고야 말겠다는 집착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떤 모습이 위너이고 루저인지에 대한 기준은 갈수록 모호해질 것이고 이런 싸움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유와 다양성이 버거워 엉터리 틀이라도 만들어 점수를 매기려 들 것이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었어도 누군가가 한 손에는 회초리, 다른 한 손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들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는 노예 마인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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