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무한 자유가 불안한 이들에게는 제한이 필요하다 feat. 진상 민원인 본문
학부모 진상 민원과 관련해 어떤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온 학부모 단체 대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저희가 교육을 받은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건지, 어떻게 말해야 되는 건지…그러니까…소통 창구가 막혀 있어요.”
기가 막힌 말이기는 하지만 가치평가는 잠시 미뤄두고 이 발언을 분석해보자.
이 말은 솔직한 고백이기는 하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바로 진상 민원에 대한 지난 포스트에서 묘사한 그 양상이다. (https://open.substack.com/pub/dirtmentalist/p/9dd?r=6obay4&utm_campaign=post&utm_medium=web)

이들은 민주 사회에서 아이들의 권리를 챙겨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뭔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제한이 걸릴 때까지 적정선이라는 걸 스스로 설정하지 않는다. 마치 어릴 때 너무 굶주렸던 유기견이 적정량의 먹이 섭취라는 걸 배운 적이 없어 먹이가 앞에 있으면 있는대로 과식하듯이.
무엇보다 화룡점정은 바로 이 부분.
“…소통 창구가 막혀 있어요.”
소통 창구가 막혀 있다고? 이 말은 사실 현실과 정확히 반대이다. 이는 교사들 뿐 아니라 입장이 다른 학부모들도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부분인데 현재 교사들은 학부모들에게 너무 직접적으로 열려 있다.
24시간 카톡으로, 전화로 연락이 가능하고(이 부분은 올해 3월부터 학교에서는 제한 조치가 취해졌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여전히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민원 접수도 너무 쉽다. 이렇게까지 다양한 소통 창구를 무제한으로 방만하게 열어놓은 게 문제다. 일단 교사들의 부담을 줄이려면 이 무제한 소통에 제한을 걸어 최소한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이 학부모는 소통 창구가 막혀 있어서 답답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무제한 자유 방임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많은 예술 작품에 엄격한 형식이 적용되는 이유,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루틴’을 만들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유. 그건 바로 무제한이 무한 방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방향성도 잡을 수 없고 선택도 할 수 없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가 뭘 해야 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스스로를 통제해본 적 없는 뇌와 육체는 스스로를 해치는지도 모르고 적정선을 넘어 폭주한다.
무제한의 자유는 사실상 자유가 아니다. 저 학부모 대표는 정확히 그 아이러니를 느낀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모기 물린 자국 하나도 매일매일 교사에게 지적하고 따지는 학부모들을 두고도 ‘소통 창구가 없어서 갑갑해하는’ 사람들로 묘사한 것.
진상 민원 학부모들이 갑갑해하는 심리 자체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게 학교가 만든 제한 때문이 아니라 거꾸로 무제한의 자유 속에서 스스로의 주화입마 폭주가 만들어낸 감옥이라는 것 뿐.
그들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라도, 현재의 교사들에 대한 그들의 접근권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