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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주의와 성실성은 공존 불가능

Dirt Mentalist 2024. 7. 9.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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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누군가 당신에게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연습' 또는 '염력으로 물체를 움직이기 위한 연습'을 하라고 주문했다고 가정하자. 당신을 과연 이 훈련을 열심히 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신 뿐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제아무리 강철같은 의지의 달인이라 해도 하늘을 나는 연습 따위를 열심히 할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건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일에는 성실한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도리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제정신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는 특허청에서 '영구 동력 기관' 따위를 애초에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과도 같다. 패배가 100% 예정된 일에는 애초부터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흔히 무언가에서 성공하려면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건 남을 깔아뭉개는 오만함이나 근거 없는 자만심으로 자아를 팽창시키는 성격이 성공에 유리하다는 뜻일까? 물론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그런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요란하고 드라마틱한 표현이 생각보다 자신감의 본질은 아니다. 자신감과 자기 확신의 핵심은 내가 열심히 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이다. 비록 지금은 모자라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가능해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사람은 확신이 드는 일에는 과감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확신이 들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듯한 힘겨운 노력도 해낼 수 있고 생경한 도전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반면에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투자를 주저하며, 글러먹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예 포기하게 된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발전하리라고 믿지 않고, 노력해도 나아질 거라고 믿지 않는데 노력할 사람은 없다. 이는 효율성 0%의 실패 예약 미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력은 자기 확신의 정도와 어느 정도 비례한다. 자신감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동네방네 '나 잘났다'고 떠들고 다니면 성공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발전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일수록 자연스럽게 노력도 많이 하게 되고 결과에 그것이 반영된다는 뜻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  

 

한국인들은 종종 겸손과 자기 비하를 혼동한다. 이와 비슷하게 현실적 사고와 비관주의도 자주 혼동한다. 그에 따라 자기 비하와 비관주의에 빠져 있을수록 현재 위치에 불만이 많으므로 그에 대한 결핍 해소 욕구를 발휘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이상한 착각도 만연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이다. 자기 비하와 비관주의에 빠진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더 좋은 것'에 대한 희망을 이미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모럴 해저드에 빠지기 쉽고 자기계발 면에서도 노력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결핍은 낙관적 태도와 결합했을 때만 동기 부여로 전환된다. 언더독의 헝그리 정신은 결핍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낙관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 환경과 자신을 동일시해버리는 패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결핍과 비관주의의 결합은 타락과 파괴의 결말을 맺을 뿐이다. 

 

만약 자존감을 갉아먹는 환경 조건에서 자란 흙수저라면,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데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 않는다면, '의지 박약'이나 '게으름' 같은 개념으로 퉁치기 전에 혹시 마음 속에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될 것'이라는 식의 패배주의와 비관주의가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비관주의와 성실성은 논리적으로 공존이 불가능하다. 강철같은 의지도 이 치명적 모순을 이겨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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