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코멘터리

나르시시스트 스토커의 심리에 대한 짧은 메모

Dirt Mentalist 2022. 7. 7. 00:30
반응형

스토킹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저열한 이유는 가해자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강렬한 애정'의 일종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르시시스트의 'Love bombing'이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원리와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본질적으로 애정과 전혀 다르다. '건강하지 못한 애정' 따위의 표현도 틀렸다. 세상에는 '건강하지 못한 애정'의 범주에 드는 일도 분명히 있고 이로 인한 강력 사건 발생도 가능하기는 하나, 대개 나르시시스트 스토커의 살인은 그런 범주조차도 아니다.

 

스토커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예측/예상/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가 자기 중심으로 돌지 않으면 수용을 못한다는 것이다. 거절당한 스토커는 실연을 당했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하극상을 당했다고 느낀다.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게 아니고 '감히 네 까짓 게'라는 분노를 품는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을 치우듯 자신의 세상에 오점을 남긴 상대의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근거는 없다. 

 

때문에 스토커가 스토킹 대상을 죽이려 할 때, 이는 감히 우주의 중심인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고 하극상을 한 오만한 자에 대한 처형으로 여겨진다. 연쇄살인범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고 피해자들을 심하게 모욕하는 이유도 같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만물의 척도가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해주지 않는 모든 것들을 도덕적으로 어긋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대개 매우 끈질기다. 연을 끊으려 해도 계속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어느 시점까지는 계속해서 감언이설을 하며 가면을 쓴다. 호의와 선물을 거절해도 계속 강제로 떠안긴다. 당신이 좋아서가 아니다. 거절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이다. 나르시시스트가 베푸는 호의와 선물은 '받고 채무자가 돼라'는 명령이지 거절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자유의지와 옵션은 나르시시스트 사전에는 없는 개념이다. 말 그대로 그들의 세상에서 타인은 곧 지옥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