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코멘터리

학교와 교사의 우선적 임무는 학생들의 생명 및 안전 보호

Dirt Mentalist 2022. 1. 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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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여고 학생의 위문편지 문제가 상당히 시끄러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사안의 본질은 그저 한 학생의 불성실한 과제 수행이다. 사춘기 학생이 봉사 과제를 다소 불성실하게 이수했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고 사회 문제도 아님은 물론, 교육이니 인성이니 하는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낯뜨거울 정도로 매우 사소한 사안에 불과하다. 장담컨대 그 정도 수준의 위문편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등장할 것이며 한국이나 다른 나라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사적 악의 없이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아이가 모범생일 수도, 특정인의 취향에 꼭 맞는 편지를 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까지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아무도 교과서가 정한 영역에서 조금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정도의 일로 여론이 시끄러울 정도라면 온 나라에서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색출해 광장에 끌고 나와 자아비판시켜야 할 일이다. 이 정도 문제를 언론이 앞다투어 다루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한국인들이 '사는 것이 힘들다'는 투정과 달리 너무 심심하고 할 일이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사안 자체는 사소하고 뉴스거리도 아니지만 이에 대한 사회 전체 및 진명여고의 대처는 한국의 교육관과 미성년자 권리 보호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학생의 불성실한 과제 이수는 기껏해야 누군가의 취향을 거슬러 불쾌감을 준 일에 불과하나, 이후 진명여고 학생들에게 쏟아진 협박, 언어폭력, 포르노 사진 합성 유포 등의 행위는 명백히 범죄적이다. 실질적으로 지금 한국 상황에서 사법 처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와 무관하게 강간 협박과 사이버 폭력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학생에게는 도덕적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이들이 정작 본인들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다. 이 폭력이 범죄라는 것은 누가 먼저 명분을 제공했는지와는 무관하다. 또한 아무리 주관적이라지만 고작 불성실한 위문편지 한 장이 강간 협박을 해도 무방한 명분이라고 보는 것은 어떤 가치관에 입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엄마 말 안 듣고 과격하게 놀다가 접시 한 장을 깼다고 해서 이를 '인면수심의 패륜적 행각'이라고 칭하고 절대 용서받지 못할 아이들로 낙인찍는다면, 이는 아이들이 아니라 낙인찍는 성인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봐야 할 일이다. 아울러 이 일이 그 동안 남성들이 쌓아온 여성 전체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정당한 변명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 사례가 '증오 범죄'의 완벽한 정의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나 진명여고는 이 상황에서 신상이 털려 부당하게 테러를 당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은 채 오히려 해당 학생과 성인 남성 군인간 직접 대면 사죄를 주선하고 군대 위문의 자리를 만들겠다는 경악스러운 발표를 했다. 이것은 여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현재 실제적인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을 매우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내모는 짓이다. 어떤 경우에도 범죄 협박을 받은 미성년자를 그 주도자에게 노출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백 번 양보해 학생의 잘못이 크다 쳐도 이런 방식은 적어도 OECD 선진국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발상이다. 장담컨대 이런 상황이 미국 등지에서 벌어졌다면, 학교 측은 가장 먼저 학생들에 대한 테러를 지속할 경우 강력한 대처를 하겠다는 경고문부터 올렸을 것이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개한 일부 여론의 비호 아래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있는 이리떼들에게 죄없는 학생들을 던져주는 인간들은 성폭력에 대한 위협으로 아이들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교사의 자격이 없다.

 

 

이것은 학생이 한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는 무관하다. 사후 교육은 철저히 시키더라도 일단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아이들의 신상은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학교로서 할 일이다. 성인, 그것도 학교와 교사들이 학생들을 희생양 삼아 아이들을 여론의 먹잇감으로 내주고 본인들만 개념남/개념녀로 인정받겠다는 이런 비겁한 행위는 한국인들이 그렇게나 비웃는 인도 같은 나라에서나 발생할 일이다. 여론이 어떻게 미쳐돌아가든 학교와 교사의 본분은 기본적으로 학생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일이다. 여론 재판에 나몰라라 학생을 떠넘기고 알아서 처분하세요 식으로 나오거나 본인들이 국평오 칭찬 좀 받겠다고 학생에게 자발적 신상 공개를 강요하는 것은 교육자의 본분을 져버리는 일일 뿐 아니라, 심할 경우 본인들이 도리어 사법처리를 받고 범죄자가 될 여지까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의사가 본인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정적이 입원했다고 해서 그의 의료 정보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거나, 여론 재판을 원하는 폭도들에게 환자를 내어주는 것과 같다. 

 

 

한국은 좌파건 우파건 이런 기본을 모르는 여론 재판 동조 현상이 극심하다. 실체도 없고 변덕스러운 '사회통념'이 무슨 대단한 도덕적 기준이라도 되는 양, 그에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이 유일한 사회 운영의 방법론이자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바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퓰리즘은 거의 한국의 문화적 풍토병 내지는 유전병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애초에 포퓰리즘이 왜 문제적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정치적으로 시급하다는 이유로 법대 교수라는(그리고 후에는 무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조국이 국정원 여직원의 신상정보를 SNS에서 퍼뜨리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현재 한국 사회는 본인의 임무나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현대 사회의 기본 원칙까지 여론 재판 앞에서 손쉽게 무효화시켜버리는 비겁자들로 구성된 사회이다. 전문가 집단의 원칙이 비전문가 집단의 감정적인 징징거림 앞에서 손쉽게 버려지는 사회는 아직 근대화가 덜 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시민의 권리와 법치의 원칙이 미약하기 때문에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한국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전혀 친화적이지 않은 공간인 것은 유구한 전통이지만, 이토록 뻔뻔하게 성범죄자들과 함께 여고생의 머리채를 신나게 휘둘러 잡는 이들이 교육자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것은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생각했을 때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일이다. 

 

 

만약 진명여고가 이렇게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 계속해서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고 기어코 사이버 성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들 앞에 미성년 아이들을 그대로 대면 노출시킨다면, 진명여고 교장은 교육자가 아닌 포주라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한국의 지체된 문화 수준에 편승해 무슨 대단한 교육행위를 하는 것처럼 허세를 떨어봤자 이는 바다 건너에서는 아동 성범죄 또는 증오 범죄 공모자로 쇠고랑을 찰 일에 불과하며, 한국 문화의 빠른 변화상을 볼 때 내수용 유효기간 또한 5년~10년에 불과할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위험한 강요는 논리적으로 학생/학부모 측의 교장과 학교를 상대로 한 고소 케이스가 성립될 가능성 또한 충분히 있다. 지금 진명여고 교장이나 교사들이 일부 성범죄자 이대남 여론을 과대평가해 전체 사회 통념과 동일시하고 거기에 알랑방귀를 떨기 위해 학생들을 직접 매칭시키고 학생들에게 성인 남성에 대한 사적인 감정 위로 책임을 부여하는 정신나간 전략을 택한다면, 말년에 모든 추태가 '재발견'된 시인 고은처럼 본인들의 미래는 없다고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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