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코멘터리

광우뻥과 백신 괴담

Dirt Mentalist 2021. 12. 18.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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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간다'는 표현은 상당한 통찰을 담고 있지만 너무 감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수사라서 일반인들에게 쉽게 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정도면 무난하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이 본인과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 문학적 수사를 좀 더 일상적인 서술로 바꾸면 '적의 수준이 곧 나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사람은 자신이 싸우는 적의 수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현재 싸우고 있는 적의 수준은 곧 나의 현재 수준이 거기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거나, 또는 처음에는 그렇지 않더라도 싸우다 보면 영향을 받아 수준이 동기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싸움도 접촉이며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호작용하는 대상의 영향을 받으며, 그 상호작용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하루종일 남의 부도덕함을 책망하고 씹어돌리기 바쁜 사람이 외적으로 보이는 포지션의 논리대로라면 매우 도덕적이어야 하겠지만 실상은 반대인 경우가 절대 다수인 이유도 그래서이다.

 

백신 접종은 다른 모든 공중 보건 정책이 그렇듯 집단적 차원에서 이익이 되면 소수의 리스크를 불가피하게 감수하고 진행되는 정책이다. 나치에 의해 더럽혀져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우생학의 유산이 다분히 남아있는 정책의 일종인데, 원래 다른 공중 보건 정책이나 각종 산전 검사, 태아 검사 등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생학의 전통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 크다. 코로나 백신 뿐 아니라 신생아 시절에 여러 백신을 의무접종하는 것도 소수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인간을 집단 편의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우생학적 정책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전자파에 극도로 예민한 소수의 사람들은 휴대폰 기지국이 있는 지역에서 살지 못하고 전자파가 전무한 곳으로 피난해 사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다양하며 이 모든 사례를 이론화할 수 없기 때문에 백신에도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본인이 그러한 소수 사례에 가깝다고 판단되거나 또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시험해보고 싶지 않다면 접종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백신 때문에 이미 수십만 명이 사망했는데 정부가 이를 숨기고 있다거나, 백신 속에 미지의 괴생명체가 우글거린다거나, 빌 게이츠가 백신 속에 칩을 숨겨놨다거나 하는 괴담들을 보고 있으면 이건 광우뻥 사태의 데칼코마니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인터넷에 힘입어 미국 안티백서 집단의 최첨단(?) 문화와 초고속으로 동기화되고 있는 일부 여론을 보면 이 나라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아키' 카페를 한목소리로 비웃고 조리돌림하던 나라가 맞는지 믿기지 않는다.

 

광우뻥과 백신 괴담의 데칼코마니 구도는 '문재앙' 정권의 문제가 실은 유행 지난 깨시민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일반 문화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촛불 들고 박근혜 타도만 하면 유토피아가 올 것처럼 주장하고 김어준 방송을 듣는 게 상식으로 여겨지는 대세 속에서 소수 의견은 숨조차 쉴 수 없는 분위기였는데, 그 문화가 몇 년 만에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개선되었을 리가 없다. 지지 정당 및 정치적 포지션은 포장지일 뿐이다. 그 속에 숨은 비과학적인 광신도의 면모는 숭배 대상과 타도 대상을 바꾼다고 해서 개선되지 않는다. 최근에 급증한 듯 보이는 신우파의 정체는 그저 민주당 천하에서 떡고물을 바라다가 못 받은 데 대한 배신감으로 충동적 개종을 한 깨시민 낙오자들일 뿐이다. 그 옛날 운동권이 산업화 시대에 낙오된 이들의 일차원적 분노를 모아 내란을 일으키려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특정 정권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숭배나 배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구제해보려는 낙오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좌파가 집건하건 우파가 집건하건 마찬가지이다. 그런 건 세속의 모든 오욕을 버리고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구도자 또는 알라후 아크바를 외치며 세속의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고 천국에 가 수많은 처녀와 놀아나겠다는 테러범에게나 어울리는 태도이다. 과학과 기술에 기초한 현대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겠다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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