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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개선하는 방법 -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기

Dirt Mentalist 2023. 11. 2.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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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계획을 흔히 로드맵 또는 테크트리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다. 로드맵과 테크트리의 특징은 선형적이라는 것이다. 1단계 후에 2단계, 2단계 후에 3단계가 진행되는 식으로 빌드업을 하고 그 빌드업의 필연적 결과와 성취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로드맵과 테크트리의 핵심이다.

 

일직선 고속도로처럼 코스가 가시적으로 분명해 보이고 그에 따른 필연적 결과물이 보장되는 선형적 로드맵/테크트리 딱 들어맞는 진로의 예로는 의사를 꼽을 수 있다. 의예과 입학 후 본과 과정을 거쳐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따는 테크트리는 중간에 예외적 상황이 발생하기 힘들고, 일단 그 테크트리에 입장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직업적 경험은 대동소이하게 진행된다.

 

반면에 연예인이라든가 인플루언서 같은 직업은 선형적 로드맵/테크트리를 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엑스트라->단역 배우->조연->주연->상업적 히트->오스카 상 수상' 이런 식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없다거나 그런 계획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로드맵/테크트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지와 희망사항이 담긴 개인적 선언에 가깝다.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고 일이 실제로 이런 단계로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중간에 가로막히는 상황도 부지기수겠지만, 행운이 따르는 경우에는 중간 몇 단계가 생략되어버릴 수도 있다.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의사의 테크트리에서는 불가능한 경로이다.

 

한국인들은 주로 선형적 로드맵/테크트리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선망하도록 주입하는 전문직들이 대개 이런 테크트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은 알다시피 발을 들여놓기는 어렵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그 뒤의 경로는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인다. 자격증을 한 번 획득하면 박탈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피고용인부터 자영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 면에서 탁월하다. 법조계에 로스쿨이 도입되기 이전 사법고시 시절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극심했다. 극심한 레드오션식 경쟁으로 인해 실제 전문직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함에도, 어릴 때부터 세뇌되는 이러한 선망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선형적 로드맵/테크트리를 세계관의 중심에 두도록 만든다.

 

두 번째, 나라 자체가 어디에서든 수직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정부터 기업, 정부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연식이 중요시되는 조직 및 사회의 분위기는 세상 만사가 시간에 따라 순서대로 차근차근 벌어지며 모두가 그러한 선형적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 몇 살까지는 뭘 해야 하고 또 그 다음 몇 살까지는 뭘 해야 한다는 식의 강박도 이러한 선형적 사고에 기인한 면이 크다.

 

세 번째, 타고난 뿌리나 본성, 한 번 설정된 캐릭터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역사적 뿌리가 깊은 국가 정체성과도 연관된 부분인데 기억하는 과거가 많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과거가 주는 감정적 무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과거를 잘 잊지 않으며, 그만큼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주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한 번 어떤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사와 세상사를 일관되고 선형적인 궤도선상에서만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형적 사고는 세상의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직업에 한정해서 보아도 앞서 언급했듯 선형적으로 예측이 쉬운 경로를 가진 직업은 자격증 진입 장벽 자체가 매우 높은 전문직에 한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는다. 직업 외 다른 부분으로까지 시선을 넓히면 인생의 비선형적 면모는 한층 더 심해진다. 예를 들어 사람 간의 관계와 감정이 둘 사이에 쌓인 세월과 비례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며, 지구 반대편에서 어느 독재자의 변덕 때문에 갑자기 터진 전쟁으로 내가 영향을 받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죽음 또한 어느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선형적 사고방식으로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도 힘들고 대처는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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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전쟁처럼 거대한 블랙스완식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위처럼 본인이 통제 가능한 라이프스타일 패턴을 보면 왜 선형적 사고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선형적 게임식 진행에서는 특정 단계에서 패배했을 경우 저장해놓은 특정 단계에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인생을 구성하는 많은 일들은 선형적 단계로 존재하기보다는 되먹임 사이클의 일부로 존재한다. 한 습관은 다른 습관과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디가 머리이고 꼬리인지,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이게 1단계인지 저게 1단계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 뿌리 등을 찾아내 그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해결하겠다는 전략으로는 이런 사이클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쁜 습관 하나를 고치려 해도 그것이 일상의 다른 부분과 사이클로 연결되어 있는 한, 견고해 보이는 그 순환을 깨지 못하고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생활에서 작은 좋은 습관 하나 들이기 또는 작은 나쁜 습관 하나 없애기가 생각보다 힘든 이유도 사람의 생활 패턴이 상호의존적 사이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단지 개별로 존재하는 1회성의 선형적 미션이라면 식은 죽 먹기만큼 쉬운 일도, 매일 반복되는 다른 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수행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그러나 그만큼 리워드도 크다. 사이클상에 존재하는 것은 작은 것 하나만 고쳐도 연쇄적으로 다른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생활 패턴 사이클을 예로 들면, 이 악순환을 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순환 고리 중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것부터 붙잡고 개선하는 것이다. 1) 아무리 보상심리가 들끓어도 꾹 참고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2) 어제 얼마나 늦게 잤든간에 이를 악물고 아침 일찍 일어나거나 3)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무슨 수를 써서든 성취도와 건강 상태를 유지해 스트레스와 보상 심리 자체를 줄이든가 등등의 옵션이 있을 수 있다. 본인 취향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장 무리가 없고 쉬운 옵션부터 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고, 모든 옵션을 다 동시에 시도해 보는 것도 본인 자유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개선이 있으면 되먹임 사이클에서 도는 악영향 자체가 줄어들어 시간이 지나면 다른 부분에서도 개선이 연달아 나타난다는 것이다.

 

방법은 지금 바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아무거라도 우격다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의 순서에 대한 분석은 생각보다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순서에 대한 강박은 그냥 해도 될 일에서 쓸데없이 전제 조건을 찾고 선결 과제를 찾는 미련한 행태로 이어질 수 있다. 스스로 장애물을 발명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사회인이 된 사람이 진로를 바꿔 의사가 되고 싶다면 지금 하는 일들을 모두 놓고 상황을 180도 바꾸어서 수능 공부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정도로 테크트리가 명확한 일이 아니라면 순서는 내가 정해야지 남이 정해줄 수가 없다. 그러니 무식해보여도 그냥 행동을 시작하는 게 맞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닥치는대로 해가며 그 다음 단계를 직접 모색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도 감수해야 한다. 때로는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거나, 남에게 바보처럼 보이거나, 확신이 없어지거나, 비효율이 발생하거나, 일이 지저분해진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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