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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과 주체성 결여 - 사소한 것에서부터 주체성을 지키기

Dirt Mentalist 2023. 7. 2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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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가정 환경, 착취적인 부모로 인해 위축된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꼭 성장기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착취적인 대인관계에서 '을'로 지낸 사람들은 대개 자존감과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자존감과 주체성이 결여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한 결정을 할 줄 모르며, 또 다른 착취적 대인관계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인생 대부분의 문제는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 순환 구조로 되어 있는데 순환의 특징은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멈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의 순서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어디에서 끊고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결국 자존감과 주체성이 낮으면 자존감과 주체성에 상처를 주는 일이 더 잘 생기고 그런 경험 때문에 자존감과 주체성은 더욱 낮아진다. 

 

그럼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어디에서든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나 주체성이 거창하고 심오한 개념이라고 생각할수록 접근은 더 힘들어진다. 대단한 성공이 필요하거나 비싼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최소한 남만큼 존중하면 된다. 간혹 자존감이 낮은 것 같으면 비싼 식당에 가서 대접받으며 식사를 한다거나 스스로에게 비싼 선물을 사준다거나 하면서 '나 자신을 대접하라'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것도 경우에 따라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벤트성 대접은 근본 해결책도 아니고 효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가끔씩 비싼 선물을 해주지만 반짝 잘해줄 때만을 제외한 일상 속에서는 나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스스로에게 아무리 비싼 대접을 한 번 해줬다고 해도 일상 속에서 내가 스스로를 무시하는 버릇이 지속되면 자존감과 주체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조금씩 자신을 존중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이런 훈련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1. 자신의 감정과 의견의 정당성을 수시로 남에게 확인받지 말 것

 

지금 몸이 으슬으슬 추운가? 그러면 곧바로 겉옷을 걸치든가 또는 실내 온도를 조절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닌데 실내 온도 조절을 위해 남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면 물어도 좋다. "혹시 지금 춥지 않아? 온도 좀 높여도 될까?"

그러나 이런 질문은 순전히 공용 공간의 온도 조절 결정을 위한 목적이어야지 나 자신이 추운 것에 대해 남의 확인을 받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남이야 내 질문의 목적을 모른다 쳐도 스스로를 속이면 안 된다. 자존감과 주체성이 약화된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감각마저도 스스로 의심하고 남에게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에 보면 "제가 화내는 게 맞나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감정이 정당한지를 지나치게 검열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민하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해도 이는 일차적으로 스스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자마자 바로 남에게 이를 보고하고 평가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2. 리액션을 자제할 것

 

사람의 주체성을 가장 갉아먹는 나쁜 버릇 중 하나가 주어진 상황에 반응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반응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주체적이라는 말의 반대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외부 환경 조건, 타인이 자기 마음대로 떠드는 말 등은 나의 책임이 아니며 내가 거기에 반응할 책임도 없다. 모든 사람이 입방아에 올리고 있는 연예인 가십이 있다고 해서 당신도 그걸 반드시 알고 같이 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조회수가 높은 쇼츠 영상이 있다고 해서 당신도 그걸 반드시 클릭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관심 없으면 특별히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맞장구를 쳐주거나 웃어줘야 한다는 강박 따위는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남의 동의와 확인을 바라지 않는 것이 1번의 핵심이었다면, 반대로 나 역시 남에게 동의와 확인을 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2번의 핵심이다. 누구도 당신에게 반응을 맡겨놓은 적 없다. 무례하게 굴 필요는 없지만 상대방의 의견과 감정선을 똑같이 따라갈 필요 역시 없다.

 

3. 남의 의견에 따라 자동으로 내 의견을 폐기하지 말 것

 

특정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재미가 없었다고 치자. 그런데 나와봤더니 다들 그 영화가 재미있다고 하고 유명 평론가가 극찬을 하고 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더라 하며 난리들인 게 아닌가. 여기에서 선택은 두 가지이다. 그래도 나한테는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거기에서 판단을 끝내든가, 이것저것 해석을 찾아보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든가.

어느 선택도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누구도 남의 의견을 따라갈 필요는 없으며, 모두의 의견에 한계가 있다는 것. 자존감과 주체성이 부족한 이들은 자꾸 스스로의 의견은 묵살한 채 남의 의견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나, 잘못 이해한 게 있나 반추해보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순전히 지적인 활동으로서 그런 점검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내 의견과 남의 의견이 다른 상황 자체가 감정적으로 불편하고 불안해서 억지로 대세에 따르는 척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라. 괜히 분위기 맞춘다고 눈치 보고 내 의견 아닌 것을 내 의견인 척하는 것이 버릇 되면 점점 나와 남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자존감도 내려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 달라도 괜찮다는 것을 관철시키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게 주변 분위기 맞춰주고 무난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4. 남의 반응을 보고 내 반응을 결정하지 말 것

 

뉴스에서 특정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치자. 기사 내용을 읽고 자신이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뉴스 기사 스크롤을 쭉 내려서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고 최다 추천 댓글에 나타난 반응을 그대로 복사해 자기 자신에게 Ctrl+V를 해 버린다면? 이건 주체적인 생각/감정이 아니다. 쉽게 소속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 동조화 현상을 유도하는 것이다. 능동적인 판단 과정은 생략해버리고 그냥 남의 생각에 수동적으로 감염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쉽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머리와 내 머리를 동기화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이처럼 자존감과 주체성이 부족하면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가 과해져 스스로의 판단력을 제물로 내놓고도 위험한 줄 모르는 수가 있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모두가 참정권을 가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체적 판단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세 댓글 반응과 내 반응을 일치시키는 게 당신을 인싸로 만들어주고 사회 주류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남과 나는 개별 존재이며, 내 판단이 설 때까지는 남의 판단과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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