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정신적 흙탈 맵

3대 흙멘탈병: 정치병, 덕후병, 소비병

Dirt Mentalist 2023. 7. 16.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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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흙멘탈이란 흙수저의 멘탈이라는 말이라기보다는 건강하지 못한 멘탈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d44zCkvNFw 

랜디: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어! 이제 오마바가 당선됐으니 내가 원하는 말을 할 거야! 헤이, 보스! 이 개새*야! 오바마는 우리에게 뭐든 가능하다고 말했어!

보스: 이봐, 나도 오바마 뽑았어!

랜디: 웃기지 마! 오바마는 너에 대해서 한 말이 아니야! 

 

현재 제1세계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정치병, 덕후병, 소비병의 3대 흙멘탈병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명백히 제1세계에 속함). 왜냐하면 이 3대 흙멘탈병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에서 불가피하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이다 보니 모두가 참정권을 가지고,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모두가 시장에서의 소비자 정체성을 가지며, 상대적으로 의식주 문제가 잘 해결된 풍족한 선진국이다 보니 문화 산업에 붙는 부가가치가 커져 셀리브리티들의 스타 시스템이 화려하게 작동해 사람들의 눈을 홀린다.

 

하루 일상 중 저 3대 흙멘탈병 증상을 발현시키지 않는 시간이 과연 평균적으로 얼마나 될까. 방심하는 순간 셋 중 어느 하나에 걸려들기 쉽기도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어떤 행동이 저런 병의 증상인지를 깨닫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심한 정치병/덕후병/소비병에 걸린 사람과 소통해 본 경험이 있다면 다들 느낄 것이다.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니 애초에 어딘가에 선을 긋는 것도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보기엔 정치병인 것이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상식의 영역이고, 누군가가 보기엔 지나친 소비도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건강한 욕망 표출일 수 있다. 그런 한편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행동을 할 때에도 저런 병들의 증상이 돌출될 수도 있고, 모든 함정을 피하려다 지나친 자기 검열을 하게 되어 행동이 경직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3가지 흙멘탈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문명 사회와 분리된 타잔이 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므로 지나치게 근본적인 결벽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균형의 문제라 결국 이 병들이 나에게 역기능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역기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잣대는 자신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직관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다. 정치병이 나에게 역기능을 미치고 있는지는 내가 정치 관련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데 하루에 몇 분을 소비하고 있는지 등의 지표로 정량화해서 결론내릴 수 없는 문제이다. 물리적으로는 갓생을 사는 일정에 가까워서 정치 채널 시청 따위 할 시간이 거의 없다 해도, 자신과 사이가 나쁜 직장 동료에 대해 근거도 없이 내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분명히 나랑 다른 당 지지할 듯'과 같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정치병자가 맞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수준의. 

 

이러한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은 기본 지능이 된다는 전제 하에 처음 떠오르는 순간 내면에서 반드시 걸리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병이 깊을 경우에, 상당수가 이러한 껄끄러움을 그냥 무시하고 자신을 속이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합리적 직관의 소리도 사라진다.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해 완벽하게 병자의 뇌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셀프 가스라이팅을 통해 완성된 병자의 뇌는 반드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되어 있다. 정치병자의 뇌는 정치 세력에게, 소비병자의 뇌는 기업에게, 덕후병자의 뇌는 셀럽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희한한 일이다. 사람들이 대개 자신을 속이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나 기분 좋자고, 내 자존감 유지하자고, 나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자고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최종 이익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정치적 권력자들, 부유한 기업가들, 연예 산업 최정점에 위치한 셀럽들은 애초부터 장삼이사들이 주체적으로 성취하거나 책임지기 힘겨워하는 것들을 대리 추구해주는 대가로 부, 권력, 명예를 얻도록 되어 있다. 그런 구조는 숨겨져 있지도 않다. 애초에 대의제 민주주의가 그런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너무 혼란스럽고 어려우니 국민의 대표를 뽑아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 위임받은 자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타인들의 정체성을 대표해주고 자존감을 만족시켜주어야 한다. 이 채널을 성공적으로 구축할수록 표를 많이 얻는다. 때문에 특정 정치인이 이기면 내가 이긴 느낌이 들고, 반대로 지면 내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도록 구도를 짜는 것이다. 핵심은 내가 그 분야에 돈과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 얼마나 열광적으로 무언가를 지지하고 싫어하는지가 아니다. 물론 그것들도 지표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고유한 정체성이 나와는 철저히 별개의 존재인 특정 정치인, 특정 연예인, 특정 상품/기업/서비스와 직결되어 있는지의 여부이다. 

 

이 흙멘탈 3대 질병은 자아의탁과 중독이라는 면에서 메커니즘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한 가지가 중증이면 다른 증세도 중증이거나 또는 하나의 의탁 대상에 대해서 3가지 병의 징후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보자.

 

- A씨는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그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는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멤버들의 외모도 좋고, 노래도 좋고, 춤도 좋지만 그들이 해외 시장에서 상징하는 케이팝 열풍, 미국 시장에서 상징하는 LGBTQ+와 소수 인종에 대한 진보적 입장 등도 그에게 방탄을 응원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들이다. 또한 요새 A씨는 환경 문제에도 민감한데 방탄 및 케이팝의 미국 내 팬층이 주로 리버럴하고 PC한 쪽이다 보니 방탄을 응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미국의 환경 정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한 마디로 A씨에게 방탄소년단은 새 시대의 상징이며 더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그래서 A씨는 방탄소년단의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편견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새로운 세상에 기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가 엄청나게 힘들거나 눈코뜰새 없이 바빠 덕질을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지만,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덕질은 잘만 하면서 방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이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위의 A씨는 자신이 자의적으로 부여한 방탄소년단의 의미를 보편적인 것으로 타인에게까지 적용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이상을 얼마든지 아름다운 말로 포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은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 문화 시장이 이왕이면 LGBTQ+와 소수 인종에 대해 더 열린 시장이 되길 바란다'는 이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실제 미국에서 리버럴하고 포용적인 문화의 상징인 면이 분명 있으므로 자신의 의미 부여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정치적 이상을 가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며, 방탄소년단의 미국에서의 문화적 위치에 대한 A씨의 판단도 대략적으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A씨는 아무리 대스타라 한들 냉정하게 말해 문화 시장의 소비 옵션 상품 중 하나에 불과한 방탄소년단의 존재에 자신의 이상 추구 욕구를 완전히 위임해버린 나머지,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가치를 방탄소년단의 외연으로 제한하고 있다. 문화 시장 소비자로서의 선택 한 방으로 인종 문제부터 남극 빙하 문제에 이르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이런 A씨의 증세는 덕후병, 정치병, 소비병이 단일 대상을 통해 한꺼번에 나타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 및/또는 해야 하는 것은 많은데 내가 적극적으로 팔 걷어부치고 행동할 적극성은 없으니 대리인을 골라 지지하는 것으로 손쉽게 모든 것을 성취하겠다는 헛꿈을 꾸는 것이다.

 

사실 모든 정치가, 기업, 셀럽들이 끊임없이 대중의 환상을 유도해 그러한 위치가 되고자 한다. 그것이 타인의 돈과 권력을 대리 집행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시장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과 정치가도 종종 그러한 경쟁을 한다. 사람의 자원과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화력 집중이라는 면에서는 결국 대중의 관심을 끄는 모든 것이 상호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특정 K-드라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을 때 시진핑 아내가 '젊은 시절 시진핑이 김수현을 닮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한 이유가 뭐였을까? 김수현이 중국공산당 내 권력자 자리를 놓고 시진핑과 경쟁할 것 같아서? 아니, 그러지 않더라도 결국은 대중의 덕후적 열광이란 그들의 세계관 중심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심각한 영향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장 내 같은 티어의 경쟁자가 아니더라도, 세계관의 중심 자리를 빼앗기면 권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일개 개인이 타파하거나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하루종일 열을 올리고 있는 일이 과연 내 정체성을 책임 있게 걸고 하는 일인지 아니면 프록시 채널을 통해 간접 이익을 바라고 하고 있는 일인지는 돌아볼 수 있다. 이왕이면 최대한 내 자신을 직접 걸고 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 물론 대의제 사회에 살면서 간접 선택에도 신경을 쓰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세력에게 표를 던지는 것도 좋고, 좋은 물건을 고르는 것도 좋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찾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프록시를 선택해 그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려 하고, 프록시를 위한 피 터지는 대리전을 치르면서 그 대리전의 승리가 나의 정체성과 직결된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는 상태라면 이는 주체성을 탈취당한 중증의 병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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