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코멘터리

나이든 자들의 시큰둥함과 시니컬함의 실체

Dirt Mentalist 2023. 3. 2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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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닉(cynic)은 모든 것의 액면가(price)를 알고 있으면서 그 어느 것의 가치(value)도 모르는 사람이다."

 

무차별적인 시니컬함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글귀이다(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시큰둥할 수도 있고, 별로 미덥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시니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만사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그리고 자동 반사적으로 나오는 시큰둥함과 시니컬함은 대개 자신의 무능력, 무기력, 희망 없음에 대한 가장 쉽고 효과가 좋은 투사이다. 막말로 자기 인생이 볼 장 다 봤으니 모든 게 별 볼일 없고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인데 이런 시큰둥함과 시니컬함을 잘만 포장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현명함, 깨달음 등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온갖 OTT 서비스가 피 터지는 경쟁을 하면서 너도 나도 재미난 시리즈를 내놓는다 한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제아무리 별별 AI 서비스가 생산성을 높여준다 여기저기에서 떠들어도 애초부터 생산적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역시 의미가 없다. 목적이 있어야 도구가 의미있는 법인데 아무것도 추구하는 바가 없고 방향타가 없으면 세상에 좋은 게 있을 수가 없다. 목적지도 없는 사람에게 좋은 자동차를 줘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활용할 일이 없으니 당연히 가치를 모르게 되고, 가치가 안 보이니 죄다 쓰레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세상 흐름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세상 모든 일이 다 매력 없어 보이고 소용 없어 보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세상 흐름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여기에서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현자를 떠올리는 것은 낭만주의 버전이다. 좀 더 현실주의 버전으로 가면 그냥 도태됐거나, 은퇴했거나, 죽기 직전인 경우에 불과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안정성'을 목표로 삼고 산다는 것이다. 안정은 종종 변화와 목적이 사라지는 상태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더 이상의 변화와 발전이 필요 없어지는 상태를 원한다. 에너지가 투자되는 변화와 발전은 밥벌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고 문명과 소통하는 것을 '밥벌이' 활동을 위한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고통으로만 여기는 생각으로 살다가 중년이 되고 은퇴 나이가 되면 이유도 없이 화가 나 있는 듯한 시큰둥/시니컬 노인이 된다. 일을 놓음과 동시에 세상과의 접점도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어지는 나이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억지로 일해야 할 때는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했던 재미난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 돈과 시간이 허용되자 재미가 없어서 못하는 일이 돼버린다. 그토록 흥미진진하던 할리우드 영화도 더 이상 관심 없는 세상 이야기이다. 왜?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외계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지혜도 득도도 아니다. 노인네들의 시니컬한 '다 소용 없다' 타령은 깨달은 자의 지혜가 아니라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흥청망청 시간 낭비하다가) 본인 인생이 끝장났다는 개인적 하소연에 불과하다. 자신이 젊을 때는 인생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생각에 기대어 살다가 늙어서 몸이 쇠약해진 다음에는 자신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한 후회를 투사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이라도 책임감 있게 살아온 노인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모두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아무리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도 거기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원래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이므로 이건 특별한 발견도 아니다. 따라서 정말 현명한 노인이라면 인간의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찾을 수 있는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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